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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사, 지방사회의 동요와 호족의 등장재해와 기근으로 새로운 호족 등장과 종교 의지
  • 여홍, 송지환, 이보슬 기자
  • 승인 2017.12.1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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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i저널 = 경북 여 홍, 송지환, 이보슬 기자] 경상북도는 신라사대계 대중화를 위해 지난 30일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수도권 대상으로 ‘지방사회의 동요와 호족의 등장’이라는 주제로 강좌를 개최했다.

이날 강의는 가톨릭대학교 채웅석 교수가 역사학적 관점에서 논거를 제시하며 2시간 동안 강의를 진행했다.

'삼국사기'에서 홍수와 가뭄, 냉해 즉 때 아닌 눈·서리·우박의 피해, 누리 창궐 등의 재해 기록을 살펴보면, 모두 584회가 기록된 가운데 240회가 8~9세기에 집중되었다.

농업 기반시설이 충분하지 못했던 전근대 사회에서 농사는 가뭄이나 홍수 등의 재해 때문에 피해를 입기 쉬웠다.
재해가 발생하더라도 정부에서 구휼과 권농시스템을 잘 갖추어 농민을 보호한다면 사회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신라 하대에는 재해 상황이 특별히 심했으며, 정부의 대응도 미흡하고 재해와 수탈로 농민들의 고통은 극심했다.

9세기 초에 초적이 계속 발생하고 김헌창의 반란이라는 대규모 변란까지 일어났다. 9세기 중엽부터 재해와 기근이 잦아지만 이미 정부의 지방 통치력이 약화되었다.

재해와 기근 때문에 유망민이 대량 발생하고 농민항쟁이 거세지고, 당나라에서 안록산‧사사명의 난(755∼763), 황소의 난(875∼884) 등이 이어지고, 일본에서도 8세기 후반부터 10세기 중엽까지 율령의 공지공민제가 해체되고 농민들이 유망이 격화되었다.

일본 도다이지(東大寺) 쇼소인(正倉院)에서 발견된 「신라촌락문서」에는 통일신라시대 서원경(지금의 청주시) 부근 촌락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농민층이 분화되는 한편 촌주와 같은 사람들이 재산을 축적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가졌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원래 신라 정부는 지방의 유력 상층민에게 촌주와 같은 직책과 관등을 주어 포섭하여 지방 지배에 협력하도록 하였다. 그렇지만 왕경 민과 지방 민 사이에는 골품제라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관직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왕경 6부의 골품귀족뿐이었고, 골품제의 벽은 신라 말기까지 여전하였다. 나름대로 재력과 능력을 갖추었다고 자부하지만 관직에 진출하지 못하던 지방민들은 그런 골품제의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지방 세력은 무력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신라의 중앙관제와 방불한 행정기구를 운영하였다. 그 자치 행정기구를 관반이라고 부른다.

관반의 조직을 보면 최고위급에 당대등‧대등이 있고 그 밑에 일반 행정을 담당하는 호부, 군사업무를 담당하는 병부, 재정업무를 담당하는 창부 등의 부서를 두었다.

지방 세력은 무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관반과 같은 체계적인 행정조직을 갖추어 지역을 지배하였던 것이다.

그 무렵 불교계에 새로운 경향으로서 선종이 흥기하였다. 선승들은 지방 출신이 많았으며, 귀족 출신이더라도 중앙권력에서 소외되어 낙향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중앙 집권력이 약화되자 선승들이 지방 세력의 후원을 받으면서 지방에 선문을 개창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9산선문(九山禪門)이었다. 선승이나 지방 세력은 기존의 권위와 질서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시대상황에 대한 인식을 같이 하였다. 선승들이 교화를 통해 지역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점도 지방 세력이 반겼다.

지방사회의 문화적 역량이 커진 것은 지방의 학교와 유교지식인의 존재에서도 볼 수 있다. 유학 정치사상을 가진 지식인들이 신라 조정에 개혁을 요구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뜻을 펴지 못한 사람들이 지방에 내려가 지방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당의 빈공과에 급제하고 이른바 ‘3최’로서 이름을 날린 최치원․최언위․최승우 등이다. 신라 정계에서 뜻을 펴지 못하자 최치원은 은거하였고, 최언위와 최승우는 각각 왕건과 견훤에게 가서 일하였다.

향도는 불교신앙을 닦기 위해 만든 결사조직이다. 삼국시대에 불교를 수용한 이후부터 생겼으며,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첫 사례는 609년(진평왕 31) 무렵 김유신이 주도한 용화향도(龍華香徒)이다.

통일신라시기에 불교의 대중화가 본격화되면서, 부처와 보살의 자비심에 의지해 구원을 받고자 하는 정토신앙과 관음신앙 등이 민들에게 호소력을 갖고 유포되었다. 그리고 신라 하대에는 지방 유력층이 그런 불교신앙을 실천할 수 있는 단체 활동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세력기반을 강화하였다. 향도의 조직과 활동을 대개 그들이 주도한 데는 그런 의미가 있었다.재해와 기근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종교에 의지하려고 하였다.

여홍, 송지환, 이보슬 기자  iij@ii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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