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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왕산허위선생 위패봉안 및 낙성고유제 봉행왕산 허위선생의 사당인 경인사의 낙성고유제와 왕산허위선생 위패 봉안식 가져
▲왕산허위선생 위패봉안 및 낙성고유제 봉행 ⓒ국제i저널

[국제i저널=경북 석경희 기자] 구미시와 (사)왕산기념사업회는 2일 왕산허위선생의 탄생기념일을 맞아 왕산 허위선생의 사당인 경인사의 낙성고유제와 왕산허위선생 위패 봉안식을 가졌다.

왕산 허위선생은(1855. 4. 2~1908. 10. 21) 구미 임은리 출생으로 구한말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나라를 빼앗자 오늘날의 대법원장, 고종의 비서실장, 의정부 참찬 등 높은 관직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왕산선생은 13도 창의군 총대장으로 1908년 일본의 심장부인 통감부를 공격하기 위해 선발대 300명을 이끌고 “서울진공작전”을 진두지휘 했다.

서울시는 왕산선생의 13도 창의군 선발대가 통감부를 치기 위해 진군한 청량리에서 동대문간의 도로명을 “왕산로”로 명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형제, 자손까지 3대에 걸쳐 독립운동에 헌신한 3대 가문은 왕산 허위선생 가문(구미), 우당 이회영선생 가문(서울), 석주 이상룡선생 가문(안동)이 독립운동 3대 명문가에 당당이 이름을 올려 구미를 빛내고 있으나, 정작 이 사실을 구미 시민들은 잘 모르고 있다.

재산과 높은 관직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공로를 인정한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했다.

안중근 의사는 “우리 이천만 동포에게 허위와 같은 진충갈력의 용맹한 기상이 있었던들 오늘과 같은 국욕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높은 벼슬아치들이란 제 몸만 알고 나라를 모르는 자가 많다. 그러나 왕산 그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기념사업회는 위패봉안을 기점으로 선생의 우국충정 정신이 널리 알려져 모든 시민들이 관람을 통해 나라사랑 정신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석경희 기자  iij@ii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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