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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사, 목간을 통해 본 고대의 일상목간의 기록내용 단편적인 기술을 떠나 당대의 살아있는 정보며 어휘
  • 여홍, 송지환, 이보슬 기자
  • 승인 2017.11.2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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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i저널 = 경북 여홍, 송지환, 이보슬 기자] 경상북도는 신라사 대중화를 위해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과 한국고대사학회가 공동주최하여 한성백제 박물관에서 연재 강좌를 개최했다.

지난 2일 동국대학교 역사학과 윤선태 교수의 ‘목간을 통해 본 고대의 일상’이라는 주제로 2시간 동안 시민강좌를 진행했다.


목간이란 문자를 기록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서사書寫 재료로서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널리 사용된 것이다.

특히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내구성도 좋은 나무의 특징 덕분에 목간은 종이가 발명된 뒤에도 매우 오랫동안 서사 재료로 애용되었다.
한국의 고대 목간에는 글자를 반복적으로 연습한 흔적인 단순 메모부터 국가의 복잡한 회계장부에 이르기까지 각종 기록물이 다양하게 확인된다.
따라서 목간은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대인의 일상과 문자 생활에 관한 다양한 정보도 알려준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목간은 평양 일대의 한대漢代 ‘낙랑군樂浪郡’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현재 발굴된 한국고대목간의 대부분은 신라목간이다. 경주의 안압지, 월성해자, 황남동 376번지유적과 같은 신라의 도성유적을 비롯해, 하남 이성산성, 함안 성산산성 등 지방의 관아유적에서도 목간이 발굴되었다.
신라목간은 백제목간에 비해 출토점수도 많고, 목간출토 유적이 시대별로, 또 지역별로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

목간의 형태와 종류로 장부 정리용 목간들은 그 폭과 길이가 대체로 4.5×30cm 안팎의 일정한 크기로 제작되었다.
장부의 기재 양식은 목간에 가로줄을 그어 2~3 단으로 나누고 각 단에 2~3행으로 할서割書하였다.

여러 개의 목간을 끈으로 편철할 수 있도록 상단 중앙에는 구멍을 뚫어 놓았는데, 오늘날 링으로 묶은 여러 장의 메모카드와 유사하다.

권축卷軸에 말아 놓는 두루마리 종이 문서의 경우, 그 문서의 제목을 권축에 기록하여 문서의 표지標識로 삼았는데, 대표적인 방법이 제첨축題簽軸이다.

고대에는 세금을 현물로 중앙에 납부하였다. 이때 관아에서는 납세자를 분명히 확인하기 위해 납부자의 소속 지명, 이름, 세액 등을 기록한 꼬리표를 나무로 제작하여 세금 꾸러미에 매달았다. 이 꼬리표를 ‘하찰荷札’, 즉 짐표라고 부른다.

경남 함안 성산산성에서 300점 이상 출토된 하찰은 6세기 후반 무렵 신라의 각 지방에서 함안으로 보낸 세금에 매달았던 하찰인데, 당시 신라의 국가 유통망과 생산 수취구조를 알려준다.

성산산성에서 발견된 하찰은, 신라가 이들 지역을 차지한 뒤 백제의 가야 진출을 봉쇄하기 위해 낙동강 수로를 활용하여 식량 등 전략 물자를 함안으로 집중시켰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찰들 중에는 쥐의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이는 각지의 세금이 조창漕倉으로 이송되고 나서 일정 기간 집적되었다가 함안으로 운반되었음을 말해준다. 또 하찰에는 “도둑이 든 탓에 세금을 잃어버려 새로 목간만 제작하였다”는 내용도 확인된다.

안압지에서 출토된 목간 중에는 신라 동궁의 여러 문 이름과 그 아래에 한둘의 인명을 기록한 ‘문호門號’ 목간이 있는데, 왕궁의 경비 시스템을 알려 준다.

신라에서는 애초 경비 인원을 궁문별로 나누고 그 이름을 목간에 기록해 놓았다. 그런 다음 그날그날 근무의 실재 여부를 직접 감독 검사한 뒤, 근무를 서는 경비원의 이름 아래에 감독자가 ‘在(있었음)’를 기록하였다.

월성 해자와 안압지에서는 의약 처방이 기록된 목간도 발굴되었다. 이 목 간들로 짐작건대, 신라에서는 6~7세기부터 중국의 의서醫書를 학습했으며, 약재 효용과 조제량을 숙지하고서 의약 처방을 내렸다.

신라 왕실은 수산 가공물을 ‘옹瓮’이나 ‘부缶’로 불리는 크고 작은 단지에 담아 창고에 보관했는데, 삭히는 음식인 경우에는 숙성하는 발효 기간을 고려하여 품목과 제조 일자를 명확히 기록한 꼬리표 목간을 단지에 매달았다.

목간의 기록 내용은 단편적인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당대의 살아 있는 정보와 어휘를 담고 있기 때문에 역사 연구에 미치는 영향력과 파급도 가 매우 크다.

앞으로 목간은 자료 부족으로 허덕였던 고대사 연구를 새로 운 국면으로 이끌 원동력이 될 것이 분명하다.

여홍, 송지환, 이보슬 기자  iij@ii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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